"오늘, 내 집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 보러가지 않을래?"
오스트리아인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우리의 연애 초기, 데이트가 끝나가던 그리 늦지 않은 저녁 시간에, 그가 나에게 자기 집에 고양이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어! 혹시 다른 마음 있는 거 아니야? 진짜 고양이만 보여주는 거지?"
나는 장난 반, 진담 반,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머물지도 모르는 오스트리아. 소위 장기 여행자의 신분으로서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 남자의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많이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나의 남편)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30대 초중반에 맞이한 설레는 사랑의 감정에는 무거운 책임이 동반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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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그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내게 첫 데이트를 신청했던 순간부터 그 고양이에 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핸드폰 속 몇장의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고 고양이의 나이와 이름은 물론 어떻게 지금까지 돌보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그가 내게 집으로 초대 했던 날도 고양이와 집에서 시간을 보낸 후 나를 만나기 위해 외출한 터였다.
그는 유럽의 모든 근로자가 당연히 누리는 긴긴 여름휴가 중이었고 이틀 후 본인이 미리 계획을 해두었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와 내가 만난 것은 그의 여름휴가가 막 시작되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여행을 떠나게 되면, 집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는 (이제 막 휴가에서 돌아온)원래 주인인 친구 부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의 겨울 휴가 혹은 다음 해 여름휴가 전까진 자신이 돌볼 수 없으니, 고양이에게 날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그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방긋방긋 웃는 그 남자(남편)의 미소를 보았던 나, 초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고양이만 보기로 약속하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함께 걷는 그 여름밤의 공기는 참 상쾌했다. 하지만 낯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걷는 나에겐 많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점점 짙어지는 어둠 속에 노란색 가로등 불빛으로 수놓아진,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걸어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그의 손길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열리는 문과 동시에 그동안 사진으로 보았던 회색 고양이가 스르륵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계단과 거주 공간의 출입문이 모여있는 복도는 두꺼운 투명 유리문으로 분리 되어있어 안전했다.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털 결을 가진 회색 고양이는 나와 눈을 마주친 후 우리의 신발과 바짓단을 탐색했고 우아하고 차분한 몸짓으로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나는 한순간 얼어버렸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녹아버렸다. 뭔가 따뜻하고 또 따뜻한 감정이 나를 감쌌다. 왠지 모를 눈물이 차올라 시선이 흐려졌다. 나를 초대한 그 남자(남편)는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서야 그가 나를 집에 초대했던 것에 대한 진심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여전히 현관문 앞에 서 있었던 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던 회색 고양이가 현관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 지금 들어갈게. 많이 기다렸지?"라고 그가 고양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현관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