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회색 고양이 - A Cat In A Grey Suit Chapter One

One-Chair-In-Woods-Wien

"고양이는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어. 나 휴가 다녀올게,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응, 잘 다녀와. 난 오스트리아에 온 여행객이니까 이곳저곳 방문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게."

그가 떠나기 전날 밤의 전화 통화에 이어, 다음날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로 서로에게 인사했다.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 나는 유럽의 몇 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유럽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비행기 환승을 위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던 순간, 당장이라도 심장이 멎을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고 설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힘차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나는 왜 유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릴 적부터 소망하고 있던 것에 대한 운명적인 직감을 느꼈다. 그래서 새로 옮긴 나라에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오스트리아에 오게 되었다.

Our-Lovely-Gray-Cat

오스트리아에 왔다고 해서 거창한 여행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떤 정해진 날짜'까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Wien)에서 머물기로 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나에겐 다른 나라를 가보겠다는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머물고 있던 빈에서 자연스럽게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할 만큼 빠르게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나의 남편)는 자신의 휴가에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원래 계획대로 휴가를 떠났다.


그날 아침도,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기로 소문난 오스트리아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나는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따라 걸었다. 아름다운 공원들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오스트리아의 멋진 건축양식을 뽐내는 건물들, 그리고 나의 같은 공간과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어우러져,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 혹은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좋았던 만큼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들 그리고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모두가 참 활기차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틀 전에 잠깐 만났던 고양이 한 마리를 떠올렸다.

가슴 한편에서 시작된 어떤 뭉클한 기분이 곧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잠시 어딘가에 앉아 있어야 했다. 야외 테이블로 즐비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을 살펴보다가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습관처럼 가방에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냈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커피잔의 손잡이에 검지 손가락을 끼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거리를 채운 사람들의 말소리를 배경음악(BGM) 삼아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고양이를 만났던 날은 참 행복했다. 그 고양이가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인 것일까? 혹은 고양이가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것일까?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가진 고양이는, 그 남자(나의 남편)와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 테이블에 머물던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옆으로 올라와 예쁜 녹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내 손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했다. 나는 그 보드랍고 예쁜 고양이의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커피잔을 응시하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진 것을 느꼈다. 손거울로 얼굴을 살폈다. 행복한 웃음이었다. 한 번 더 그 고양이를 만나고 싶어졌다. 물론 그 남자(나의 남편)도 말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테이블 위의 작은 꽃병과 커피잔을 모델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앉아있는 곳에서 보이는 골목의 풍경도 사진으로 남겼다. 드디어 노트에 무언가를 적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얼마 후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다시 거리의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고양이와 그 남자'가 많이 그리워졌다.

Jelinek_L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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