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고양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 그 시간이 점점 쌓여갈 때마다 우리 셋의 믿음과 행복 그리고 사랑은 더 깊어졌다.
사람과 동물, 특히 반려동물과 사람이 한 집에서 더불어 사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나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책이나 인터넷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반려동물) 관련 서적, 영화, 짧은 영상 클립 그리고 지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유독 나의 이목을 끌었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자기 반려동물에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고, 그들 자신을 반려동물의 '언니' 혹은 '오빠'라고 소개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엄마'와 '아빠'라고 자칭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다는 어떤 '특별한 감정'.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그 '특별한 것'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사람과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 사랑과 행복만 담겨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세상엔 범죄가 절대 사라지지 않고 평화가 있으면 전쟁도 있다.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그리고 '사람과 반려동물' 사이에는 '그 기나긴 역사'만큼, 희극과 비극이 동시에 쓰이고 있다.
내가 과연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내가 진정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비극과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나에게, '사랑'과 '행복'은 오직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엄마'와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라는 존재를 내 삶에 들여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어떤 남자와 회색 고양이' 때문에 나의 삶은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이 남자와 나의 연애가 한참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조금 머뭇거리면서도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을 '회색 고양이의 아빠'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조금 어색한 미소가 어렸다. 그 순간, 그를 보고 있던 내 심장이 요란하게 쿵쿵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한 마리의 북극곰처럼, 키도 덩치도 커다란 이 남자. 게다가 30대의 중반을 향해가는 이 '오스트리아 남자'가 자신의 애인에게, 자기 고양이도 아닌 친구의 고양이를 일 년에 두 번씩, 12년 동안 돌봐 온 것도 모자라 '그 작은 회색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수줍게 고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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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남자는 얼마나 귀여운 사람인가! 그리고 앞으로, 지금보다 얼마나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랬다. 정말 그랬다. 내가 그동안 각종 매체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어왔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한 가지 수줍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내가 이 남자의 '회색 고양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지 몇 번 만나 본 것이 전부인 '그 회색 고양이'에게 점점 커지고 있는 '어떤 몽글몽글한 감정'.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꼭꼭 숨기고 있었다고 말이다.
나는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일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재빨리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이 남자는 여전히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두 사람 곁으로 온 '회색 고양이'도 그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머쓱해진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나의 한 손은 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회색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 준 '한 남자와 회색 고양이'에게.
어둡고 먼지만 가득했던 나의 마음에, 비로소 한 줄기 따뜻한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행복'이라고 불리는 밝은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