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의 이사를 잘 마쳤다. 그날 저녁은 회색 고양이와 함께 작은 축하 파티를 열었다.
혈혈단신으로 유럽에 온 나, 그리고 어릴 적부터 간절히 소망 했던 '어떤 결심을 실행하는 날' 이후, 그다음 날부터의 인생 여정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 나에게 유럽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이사 첫날을 축하하기 위해 화이트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식탁에 차려 놓고 둘러앉아 잔을 기울였다. 회색 고양이도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우리 셋은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조금씩 취기가 오르면서 나와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리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가 아직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이 나를 짓눌렀다. 그 남자와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미 서로가 충분한 대화를 했던 터라 그날이라고 해서 뭔가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갈 무렵, 나는 그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내가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당신에게 반려동물은 어떤 의미야? 그리고 이 회색 고양이는?"
그와 나의 연애 초기부터, 짧은 듯 그러나 전혀 짧지 않았던, 우리가 함께 한 11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여름과 겨울이면 원래 지내던 그의 친구 집에서 그들의 휴가 기간 탁묘를 위해 이 남자의 집으로 오는 고양이 한 마리. 우리가 결혼을 앞둔 그해, 회색 고양이는 13살이었다(고양이가 한 살일 때, 동물 보호소에서 그의 친구에게 입양되었다). 그러니까 12년 내내 한번도 빠짐 없이 1년에 두 번, 그리고 1년의 4~6개월을 이 남자와 함께 살아온 것이다.
그는 왠지 모르게 떨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회색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어두운 이 남자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온 정신을 집중해 그의 대답을 들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긴 시간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12년, '그와 회색 고양이와의 12년'은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했다. 술로 인한 취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본 그 남자. '우스꽝스러워진 날 보고 웃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내 모습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나 보다. 곧 그의 눈에서도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한참 동안 우는 모습을 보던 회색 고양이... 뭔가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다. 고양이의 행동에 우리 두 사람은 바로 울음을 그쳤다. 얼른 세수를 하고 거울로 얼굴을 살핀 후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소파 밑으로 들어간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리고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다, 이 회색 고양이는 다른 집에서 자란 고양이들처럼 사람들에게 친절하거나 친화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람들에게 다가왔다가, 기분이 나빠지면 재빨리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회색 고양이의 기분이 나빠졌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아예 몸을 숨기는 확률이 50대50일 정도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사실, 우리의 연애 초반에 그는 나에게 회색 고양이의 성격이 조금 예민하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동안 나는 이 남자의 집을 방문할 때 드물게, 그리고 짧은 시간만 머무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회색 고양이가 그의 집에 머무르던 여름과 겨울 뿐이었다. 고양이나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고양이나 개를 만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거리를 두고 회색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고양이가 다가와 나를 먼저 만지면 아주 짧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평소 그의 손과 팔에 빨갛고 길게 그어진 상처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 상처에 관해 묻는 나에게 그는 '고양이랑 격하게 놀아주다가 생긴 것'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밤, 비로소 나는 이 남자와 회색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회색 고양이에게 이 남자와 그의 집은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탈출구이자 안식처였다. 문득, 나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런 나에게 이 회색 고양이의 사연은 더 아프게,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몇 시간 전 이 남자가 나에게 했던 "우리 셋은 운명인 것 같아."라는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의 집에서 자는 첫날 밤... 우리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즐겁게 빈 시내 구석구석을 둘러보자' 약속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불이 꺼진 방... 어떤 인기척과 함께 '보드라운 털 결을 가진 무언가'가 그와 나 사이에 자리를 잡는 것을 느꼈다. 소파 밑에 숨어 있던 회색 고양이었다. 그와 나는 동시에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위험 상황(?)을 대비해 고양이가 누울 공간을 늘렸다. 우리는 각자 침대 가장자리에 떨어질 듯 말듯 누웠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이 들어갔는데 계속 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늘 밤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이렇게 행복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