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남자의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 이후에 나의 눈에 보이는 빈 시내의 풍경이나,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와 문화는 왠지 더 새롭고 무게 있게 다가왔다. 결혼 서약의 의미, 가정, 인종과 국적 그리고 문화가 다른 두 남녀가 꾸린 가정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 1년 남짓 연애 후 바로 결혼해서일까? 사소한 것들이 오해를 불러와 다투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리고 한층 더 깊은 곳에서 경험하는 오스트리아는 거의 매일 나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유럽이 말하는 자유? 혹은 존중인가 아니면 방임인가?
결혼식 날짜가 임박해 오면서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무리 간단한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레스토랑에서 결혼식 피로연까지 마치면 아무리 빨라도 당일 자정이나 그다음 날 새벽 두세 시 정도에 귀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회색 고양이는 하루 종일 홀로 우리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회색 고양이의 원래 '소유주'인 남편의 친구에게 '회색 고양이를 돌려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남편의 친구는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 1명을 키우고 있는 기혼 여성이다).
사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은 '여름이라는 계절의 끝'이자, 항상 남편이 여름휴가를 가던 시기였다. 그동안 남편은 12년이 넘도록, 초여름에 길고 긴 휴가를 떠나는 친구의 '회색 고양이'를 맡아주었다(유럽의 여름휴가는 2주에서 4주 정도로 길다). 그리고 그들의 휴가가 끝나 돌아오면, 그제야 본인의 휴가를 떠나는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다. 또한, 남편의 '그의 친구와 회색 고양이에 대한 배려' 덕분에, 우리의 결혼식과 신혼여행은 여름의 끝자락과 초 가을로 결정했다. 심지어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간격은 30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는 아주 간단하고 단도직입적으로 "NEIN(NO)"이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의 사정은 "자신과 아이 그리고 남편이 우리 결혼식에 초대되어서 집을 비우게 되므로, 회색 고양이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나, 결혼 당사자인 우리 집에서 홀로 머물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 잘 지낼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했다.
남편이 전해주는 그 '친구라는 사람'의 대답을 듣고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남편에게 "그 친구에겐 동물이 그저 물건이야? 그것도 자기가 좋아서 입양한 13살이나 된 고양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취급해?"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그 친구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이냐고 재차 따지듯 묻는 나에게, 남편은 "유럽은 부모와 자녀 관계 혹은 친구나 사회생활에서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뭐? 이런 게 존중이라고? 그래서 당신은 그 친구한테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거야? 만약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특히 나보다 훨씬 젊은 세대의 사람들도, 한심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이건 아니다.'라고 우선 경고(주의)할 거야.
비록 남편이 그 고양이의 소유자인 친구를 결혼식에 초대했지만, 그 친구의 친구, 혹은 가족이나 주변인 등이 모두 우리 결혼식에 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 친구가 자신이 소유한 회색 고양이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회색 고양이를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돌봐 주길 부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남편과 나는 결혼 당사자로서 가족, 친지는 물론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까지 모조리 결혼식(및 피로연)에 초대했기 우리에겐 그 회색 고양이를 하루 혹은 단 몇 시간이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늘 예민하고 아무 때나 거친 공격성을 드러내는 회색 고양이의 성격상, 호텔링은 쉽게 고려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결혼했던 시기의 오스트리아는 한국 같은 '전문적인 반려동물호텔링'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 회색 고양이는 우리가 결혼식을 마치고 한 달 후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 있었다.
결혼식의 시작부터 피로연을 마칠 때까지, 나와 남편은 회색 고양이를 걱정했다. 그런데, 회색 고양이의 소유자이자 남편의 친구인 '그 친구'는 회색 고양이를 걱정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회색 고양이가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어두운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확신했다(이 글에서 회색 고양이를 반려하는 그 친구를 고양이 '소유자' 혹은 '소유주'라고 부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