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에 떠났던 3주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은 여행을 떠나기 전 말끔하게 정리해 두었던 모습 그대로 우릴 맞이했다.
오스트리아인의 아내가 되어 오스트리아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진짜 오스트리아'를 알아가자는 취지로 계획한 신혼여행. 덕분에 내가 한 번도 보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득하면서 마음도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기보다 여러 도시를 살펴보는 신혼여행을 계획했던 우리, 밤이면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질 정도로 이곳저곳을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가을이라는 계절도 성큼 다가왔다. 점점 서늘해지는 공기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열린 창문 안으로, 청량한 바람이 되어 우리의 머릿결을 흩날리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어느 곳이든 높은 산맥과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마치 유명한 화가가 '거대한 캔버스에 심혈을 기울여 멋지게 채색한 한 폭의 명화' 같았다.
어떤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여러 개의 색이 오스트리아의 자연 속에 정말 아름답고 조화롭게 물들어 있었다. 움직이는 자동차의 차창 밖, 자동차의 속도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흘러가는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의 풍경은 또 어떻던가! 잘 가꾸어진 넓은 공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농장의 소들과 말들은 이른 아침의 옅은 안개와 한낮의 햇빛 그리고 해 질 녘 노을에 반짝반짝 빛이나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른 가을 추수가 끝난 광활한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야생 동물들까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감탄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신혼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에 도착했을 때. 낯선 곳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향수병과, 이제는 현실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아! 맞다 우리 결혼했지! 결혼은 태어나 처음인 남자와 여자. 시간이 여행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서로가 말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신혼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남편은 오스트리아 지도에 타원형의 원을 그려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도 간단하고 짧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들을 표시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빈(Wien)으로 향하는 길은 결코 아쉽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 행선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그날도 우리는 매우 피곤했지만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잠깐 바람을 쐬고 오자는 남편의 말에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우리는 호텔에서 나와 주변의 '조금 한가해 보이는 카페(Cafe) 겸 바(Bar)'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각자의 칵테일을 사이에 두고 나와 남편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 나갈지" 등등...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면서 점점 진지한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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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추가로 주문했던 두 번째 칵테일이 나왔을 때, 우리는 결국 신혼여행 내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어떤 주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모든 대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 회색 고양이를 책임지고 키우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