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 A Cat In A Grey Suit Chapter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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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남편과 나)를 초대했던 남편의 친구 집을 방문해 두세 시간을 보낸 후, 남편과 나는 '그 회색 고양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친구 부부와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와 남편은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늘 앉던 조수석 대신, 회색 고양이가 들어있는 이동장이 놓인 차의 뒷좌석에 앉았다. 안전벨트로 이동장을 단단하게 고정해 두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마음에 걸리고 신경이 쓰였다. 회색 고양이는 12년 동안, 매해 여름과 겨울이면 어김없이 '남편의 집(이제는 우리 집)'으로 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뭔가 불안한지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회색 고양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거실의 소파 밑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그 모습을 보던 나와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다. 불과 몇 시간 전, 남편의 친구에게 우리가 진지하게 얘기했던, '회색 고양이를 남편과 내가 입양하는 사안'에 대해 그 친구에게서 거절도 승낙도 아닌 애매모호한 대답을 듣고 회색 고양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집에 도착한 순간까지, 내가 침묵했던 이유는 점점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남편의 침묵은? 혹시, 예전에 나에게 말했던 '유럽 문화' 혹은 '오스트리아의 상대방을 존중하고 절대 간섭하지 않는 것, 그 자유 혹은 방임'에 대한 재고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회색 고양이를 물건 취급하던 '그 친구'에 대해 남편에게 크게 화를 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나는 한 번 더 남편에게 회색 고양이를 소유하고 있는 '그 친구'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실 소파 밑에 숨어버린 '회색 고양이'가 다시 우리 집에 온 첫날이니 큰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남편에게 말을 마구 퍼붓고 싶은 충동과 분노를 가라앉히기로 했다. 그런데도, 나의 격양된 호흡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혼자 서재로 들어가 활화산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내가 머물고 있던 서재로 들어왔다.

그는 불이 꺼진 서재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 바깥 풍경을 응시하고 있던 내 옆에 앉았다. 남편은 나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는 표시로 천천히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내가 참고 또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점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자 남편은 나를 안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서재의 불을 켜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런 나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남편에게 나는 소리쳤다!

"너는 착하고 천사 같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한심한 바보야! 사람들이 널 이용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바보!"

"우리 이대로 '그 친구'가 '회색 고양이'를 계속 물건 취급하고, 너(우리)를 자기 (회색)고양이를 언제든지 돌봐줄 준비가 되어있는 '무료 봉사하는 사람' 취급하게 놔둘 거야?"

. . .

한참 동안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남편의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남편에게,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사과는 회색 고양이와 본인 자신에게 해야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남편은 머리를 서너번 끄덕이더니,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눈물을 흘렸다. 서재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마를 여유도 없이 점점 더 흥건해졌다. 우리의 소란에 회색 고양이가 놀랐던 것일까? 고양이가 언제 거실 소파 밑에서 나왔는지, 언제부터 우릴 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마침내, 나와 남편이 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주변을 살피던 순간, '회색 고양이'가 열려있던 서재의 문밖에 앉아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회색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이니 큰 소리를 내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던 나. 결국 얼마 안 가 남편에게 크게 소리 지르며 '그에게 정말 고통스러울 말'들을 쏟아낸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나와 남편은 헛기침을 하고 일부러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며 서재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와 동시에, 고양이가 다시 어디론가 몸을 숨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양이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길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 회색 고양이를 보는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우는 내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던 남편과 나는, 일어나 짧게 몇 가지 스트레칭을 하면서 긴장해서 굳어버린 몸의 구석구석을 풀었다. 그리고 남편은 마치 '갓난아기를 안는 것'처럼 회색 고양이를 조심히 들어 올려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의 두 팔에 몸을 기댄 고양이는 한껏 편안해 보였다. 그는 환한 얼굴로 고양이의 귀에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독일어 초보였던 나는 남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행복하게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 남자가 정말 사랑스럽게 보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내가 그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회색 고양이, 우리 셋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나와 남편 사이, 침대 한가운데에 누운 고양이를 보기 위해 마주 보는 자세가 된 우리는 몇 시간 전, 서재에서 서로에게 했던 약속을 작은 목소리로 한번 더 읊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회색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회색 고양이를 보살펴 온 남편이 고양이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더 쓰다듬었을 때, 고양이는 행복한지 우렁차게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어떤 사랑', '행복' 그리고 갈등과 화해. 남편과 나는 다음 날 아침 새로운 해가 밝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새로운 날을 만들고 행복한 미래를 꾸려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봄까지. 아니, 특별하게 정해진 기한이 없으니 최대한 길게 회색 고양이를 돌보자고 약속했다.

P.S.
우리가 서재에서 눈물 흘리며 대화하던 시간. 내가 "회색 고양이가 단 몇 개월 당신(우리)에게 사랑받으며 잘 지내다가, 다시 고양이를 물건 취급하는 '그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 회색 고양이'에게 상처가 되는지, 그리고 고양이가 얼마나 당신(우리)과 이 집을 그리워할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어?"라고 소리쳤을 때, 남편은 대답 대신 큰 소리로 울었다.

Jelinek_L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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