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들어온 회색 고양이 - A Cat In A Grey Suit Chapter Two

the-way-to-start-new-life

그 남자와 내가 교제한 지 10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서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오스트리아에 와서 그 남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진 우리...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 유럽의 두 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다. 오스트리아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소망하고 있었던 '어떤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 둔 '특정한 해'의 '특정한 날'에 대한 계획은 그를 만나게 되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진지한 교제를 시작한 우리에게 오스트리아와 한국이란 거리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 너무 멀었다. 나는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나라에서 그동안 유럽에서 해왔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기차와 자동차로 단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오가며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졌다.

사실, 그 남자는 우리의 연애 초기부터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표현했었다. 덕분에 일찍부터, 우리의 데이트 중 절반은 그가 나를 가족(및 친척)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나는 그들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그의 프러포즈 계획은 나보다 먼저 그의 가족과 주변인들이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도 예비 시부모님(시댁 식구들)을 포함 주변인들에게서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일까? 인종, 국적, 그리고 문화마저도 다른 우리의 결혼 준비는 어떤 장애물 하나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혼 날짜 및 배우자 비자에 대한 준비가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스트리아로 건너왔다.

다시 여름이었다. 나는 그가 사는 집이자 우리의 신혼집이 될 곳으로 이사 했다.

A-gray-cat-came-into-my-life

내 짐들을 옮기기 위해 그 남자와 함께 집의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가 사랑에 빠진 또 다른 존재 하나, 회색 양복을 입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멋진 회색 양복을 입은 신사 고양이.

그 고양이가 입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어떤 정적... 평소 같았다면 현관문 밖으로 나와 우리의 바지와 신발을 탐색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점잖게 앉은 모습으로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그 남자가 먼저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양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고양이의 귀에 어떤 말(독일어)을 속삭였다. 나와 눈높이가 같아진 고양이에게 나도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현관문 밖 통로에 쌓인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그는 고양이를 거실 안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요란한 소리에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짐들을 천천히 집 안으로 들였다.

내가 당장 사용해야 할 물건들을 꺼내고 주변을 정리한 후, 손과 발을 씻고 잠시 한숨을 돌리기 위해 거실 바닥에 앉았다. 좌식 생활이 불편한 그 남자는 식탁 의자에 앉아 각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던 고양이가 바닥으로 내려와 나에게 다가왔다. 그 남자가 아닌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고양이... 고마운 마음에 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릎 냥이'라는 거구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에게,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이자 곧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 회색 양복을 입은 신사 고양이는 나의 무릎 위에서 우렁차게 '그르릉' 거리며 일명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우리 무뚝뚝한 고양이가 이 정도로 표현하는 걸 보면 너를 정말 좋아하나 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셋은 운명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Jelinek_L

오스트리아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인 한국인.

다음 이전